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처음 호밀빵을 먹으면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겉은 분명히 잘 구워졌는데, 막상 잘라보면 속이 축축하고 묵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덜 익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식빵과는 전혀 다른 식감에 놀라기도 한다.
실제로 호밀빵은 일반 밀가루 빵과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촉촉함은 단순히 물을 많이 넣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호밀빵 속이 왜 축축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그 촉촉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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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은 원래 밀가루 빵과 출발부터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호밀을 통밀과 비슷한 재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밀은 밀을 통째로 갈아 만든 것이고, 호밀은 밀과는 다른 곡물이다.
제빵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글루텐 형성 능력이다.
밀가루는 물과 만나면 강한 글루텐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는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가스를 붙잡아 빵을 크게 부풀게 한다.
반면 호밀은 글루텐 형성 능력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식빵처럼 크고 폭신한 기공을 만들기 어렵다.
대신 내부 조직이 촘촘하고 밀도가 높아진다.
바로 이 점이 호밀빵 특유의 촉촉한 식감이 만들어지는 첫 번째 이유다.
호밀은 물을 붙잡는 능력이 뛰어나다
호밀빵이 축축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수분 보유력 때문이다.
호밀에는 펜토산(Pentosan)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펜토산은 물을 흡수하고 붙잡아 두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다당류 성분이다.
그래서 호밀 반죽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같은 양의 밀가루 반죽과 비교하면 호밀 반죽은 더 많은 수분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븐에서 구운 후에도 그 수분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결국 완성된 빵 안에는 상당량의 수분이 남게 되고, 이것이 촉촉한 식감으로 이어진다.
덜 익은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구조다
호밀빵을 처음 먹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있다.
바로 "속이 덜 익은 것 같다"는 것이다.
식빵이나 바게트는 내부가 포슬포슬하고 가볍다.
하지만 호밀빵은 단면이 촘촘하고 약간 진득한 느낌이 난다.
이는 익지 않아서가 아니다.
호밀은 밀처럼 큰 기공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내부 수분이 조직 안에 고르게 남아 있다.
또한 굽는 과정에서 전분이 젤 형태로 변하면서 특유의 촉촉한 질감을 만든다.
그래서 호밀빵을 자르면 약간 젖어 보이거나 반죽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호밀빵의 특징이다.
오히려 너무 건조하다면 호밀 특유의 매력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야 더 맛있어지는 빵
호밀빵은 일반 빵과 달리 갓 구웠을 때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가 더 맛있는 경우가 많다.
오븐에서 나온 직후에는 내부 수분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때 자르면 속이 지나치게 축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 지나면 수분이 빵 전체에 균일하게 퍼진다.
조직도 안정되면서 맛과 향이 더욱 깊어진다.
독일이나 북유럽 지역의 전통 호밀빵은 충분히 식히고 숙성한 뒤 먹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밀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되는 빵에 가깝다.
오래 촉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빵은 하루만 지나도 퍽퍽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호밀빵은 상대적으로 촉촉함이 오래 유지된다.
펜토산이 수분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관성이 좋고 천천히 마르는 특징을 가진다.
과거 유럽 여러 지역에서 호밀빵이 주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저장성 때문이었다.
오래 두고 먹어야 했던 시대에는 쉽게 마르지 않는 빵이 큰 장점이었던 것이다.
호밀빵의 촉촉함은 결함이 아니라 매력이다
호밀빵 속이 축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덜 익어서가 아니다.
호밀이라는 곡물이 가진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약한 글루텐 구조, 뛰어난 수분 보유력, 촘촘한 조직이 만나면서 일반 밀가루 빵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식감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좋은 호밀빵일수록 적당한 촉촉함과 묵직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호밀빵을 자르다가 속이 조금 젖어 보인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실패한 빵이 아니라 호밀이 가진 고유한 특징일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한 식빵과는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 빵인 셈이다.
출근과 발효 사이, 오늘도 우리가 몰랐던 빵 이야기를 굽습니다.